I. 강해 설교집/창세기 강해

창세기-35-기억하셨더라

lampchurch 2025. 4. 19. 04:56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7 24절부터 8 5절까지 말씀입니다.

 

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더라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후에 줄어들고 일곱째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아멘.

 

홍수 기록의 구조: 대칭과 중심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홍수에 대한 기록은 홍수의 발생과 진행 과정을 우리로 하여금 명확하게 알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홍수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합니다. 성경은 노아의 홍수 사건을 일기처럼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노아가 홍수 기간 동안에 일어났던 일을 날짜별로 정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기록들을 전부 모아서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상한 부분이 발견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굉장히 다른 구조가 존재하는 것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것을 정리해 보았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7 홍수를 기다림 (7:4)

 

                    7 홍수를 기다림 (7:10)

        

                             40일간 비가 내림 (7:17a)

         

                                    150일간 물이 땅에 넘침 (7:24)

                

                                             하나님께서기억하사 (8:1)

         

                                   150일간 물이 줄어듦 (8:3)

         

                            40일간 물이 마르기를 기다림 (8:6)

      

                   7 마르기를 기다림 (8:10)

              

         7 마르기를 기다림 (8:12)

 

이것은 7장과 8장을 종합한 내용입니다. 우선 7 4절에서 노아는 7 동안 홍수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똑같이 7일을 기다리는 내용이 7 10절에 등장합니다. 그런 후에 드디어 40 동안 비가 내립니다. 7 17절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7 24절에서는 150일간 물이 땅에 넘쳤다고 기록되었고, 계속해서 8 3절에는 다시 150 동안 물이 줄어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다음 8 6절에서는 40 동안 물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내용이 나오고, 8 10절과 12절에 각각 7 동안 물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냥 읽을 때는 자세히 알기가 힘들지만, 홍수의 기록은 웬햄(Gordon Wenham)이라는 구약학자가 정리한 것인데, 날짜를 더하게 되면 홍수가 발생하여 사라진 모든 날들의 길이와는 맞지 않는 같습니다. 한번 볼까요? 날짜들을 단순히 더하면 1년이 훨씬 넘는 기간이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실상 방주가 물에 떴다가 물이 모두 빠진 땅으로 올라온 기간을 1 10일로 계산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에 있는 날짜들을 더한 것이 비가 와서 방주가 물에 있다가 다시 물이 말랐던 기간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표현은 구조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내용이라는 것을 우리는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숫자들과 내용들을 이러한 나비 형식으로 위와 아래를, 7장과 8장이 서로 대조적으로 표현된 것은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시기 위한 성경의 구조라는 것입니다.

 

구조의 중심: "하나님이... 기억하사" (8:1)

그리고 오늘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내용은 구조의 한가운데에 등장하는 구절입니다. 그것은 바로 8 1절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읽었던 구절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구절이 구조의 가장 중앙에 나와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7장과 8장의 내용의 중심을 관통하는 말씀입니다. 구조의 형태를 보셔도 금방 아실 있는 것처럼, 7장과 8 전체는 구절에 집중하기 위한 구조라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노아와 방주 속에 있는 모든 짐승을 기억하셨다는 말씀이 오늘 우리가 살펴볼 내용의 핵심이 되겠습니다.

 

홍수와 역창조 복습 (가바르)

우선 7장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물이 땅에 넘치게 되었다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그리고 8 1절의 하나님이 기억하셨다는 것이 기준점으로 등장하고 다시 물이 줄어드는 이야기가 8장에서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살펴본 7장에서 가장 중요했던 단어가가바르 (Gâbar)’라는 히브리 단어였습니다. ‘물이 넘쳤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단어가 다른 의미로압도한다하는 뜻도 함께 가진다고 설명해 드렸습니다. 힘으로 넘쳐 나게 만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홍수가 지구 전체, 혹은 일부분의 사건인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함께 살펴보았지만, 어쨌든 하나님의 죽음의 심판이 천하를 압도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압도적인 심판의 결과는 번째 아담인 노아와 그의 가족의 유일한 생존으로 마무리된 것은 분명합니다. 심판의 결과는 번째 아담인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역사의 가장 중심에 서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과 세상: 성경 전체의 패턴

그래서 베드로는 노아의 홍수 사건을 세상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노아의 홍수로 끝이 났다면, 그다음엔 어떤 세상이 오는 것일까요? , 세상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조는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성경 전체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받았을 , 옛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온다는 것이나 혹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에서 모든 세대는 끝이 나고 세대가 가나안으로 들어간다는 , 그리고 우리가 아는 것처럼 세상과 모든 것이 끝나고 하늘과 땅이 오는 요한 계시록의 구조에도 뚜렷이 드러나는 성경 전체에서 빈번히 사용되고 있는 이러한 구조의 원형에 가까운 말씀인 것입니다.

 

홍수 이야기의 중요성: 구원의 모형

그러므로 노아의 홍수는 복음서를 포함한 모든 성경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이유는 이것이 단순히 홍수가 일어나서 노아만 살아남은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의 역사를 하나님이 어떻게 이끌어 가실 것인지,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어떻게 끝날 것인지,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것이 어떻게 오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변화의 핵심: '기억하사'

이처럼 노아의 홍수를 통해서 옛것과 새것이라는 아주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있습니다. 변화의 시작은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것처럼 홍수를 기다리고 물이 땅에 넘치는 것이었으며 물이 말라가고 물이 줄어드는 사건으로 변하는 것을 우리가 발견합니다. 그러면 이처럼 물이 갑자기 많아졌다가 다시 줄어드는 사건이 극적인 변화일까요? 우리가 방금 전에 살펴보았듯이 이러한 극적인 변화의 핵심은 물이 불고 줄어드는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억하셨다라는 구절이 바로 변화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시간에는 변화의 핵심에 관한 가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1. '기억하다' 의미: 언약을 이루심

번째로 살펴볼 것은 '기억하다'라는 단어 자체에 숨겨진 의미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억한다는 단어는 무엇인가를 잊어버렸다가 다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사용된 단어의 의미는 하나님이 우리와 맺은 언약을 반드시 지키시고 그것을 이루어 내시고 완성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기억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를 들어 롯의 가족이 멸망당하는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롯의 가족을 멸망의 사건 속에서 구해 내시는 내용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때 성경에서 사용된 말씀이하나님이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기억하셨다가입니다.

그러므로 기억하다라는 말에는 가지 요소가 들어있는데 그것은언약’, ‘ 언약을 지키심’, 그리고 언약을 완성하심입니다. , 하나님께서 언약을 기억하셨다고, 우리를 기억하셨다는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와 맺은 언약을 따라서 언약을 지켜 내시고, 결국 그것을 완전하게 완성하신다는 가지 의미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언약 참여: 그리스도 안에서

그러면 우리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노아도 언약을 맺었고, 모세도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까? 여러분은 스스로 언약의 백성이라고 생각이 드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언제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셨습니까? 하나님이 어느 갑자기 여러분께 오셔서 하나님이 내민 계약서에 하나님과 함께 서명을 해서 계약서를 부씩 가지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무슨 근거로 여러분이 언약의 백성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맺으셨으며,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언약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언약 백성의 영광: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

말은 사실 우리가 들었던 모든 아름다운 말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말에 속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언약을 통해서 받으실 모든 것들을 우리도 함께 받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인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 예수님은 이러한 말씀을 들으시기에 너무나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같은 언약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맺었습니다. 결과 우리들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딸이며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가 것입니다. 모든 상속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실 모든 것들을 우리가 함께 누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은 우리에게는 정말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우리 자신의 모든 삶을 변화시키는 이야기입니까? 이로 인해 우리들이 살아야 하며,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 읽기: 언약의 풍성함을 발견함

만약, 여러분이 한국으로 유산을 받으러 가게 되셨다고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국에 도착해서 유산을 받을 준비를 시작한다면 제일 먼저 살펴야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유언장일 것입니다. 그런 유언장의 내용을 꼼꼼히 읽어볼 것입니다. 그래야 유산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있을 것입니다. 다음은 유산이 얼마나 재산적인 가치가 있는지도 살펴야 것입니다. 내가 받을 유산의 가치가 얼마인지 아는 것은 중요하겠지요.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 할까요? 성경이 무엇을 말하려는지를 알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읽기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것이 무엇이며 영광이 어떤 것이고, 우리가 어떠한 기쁨 속에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실 모든 것들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뛰어나며 풍성한지를 알게 되며, 우리가 모든 것을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찬송가의 가사를 기억하시지요? ‘ 사랑하심, 사랑하심, 성경에 있네.’ 이런 가사가 어떻게 나왔을까요? 하나님은 당연히 나를 사랑하시지라고 막연히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정말 어떤 사랑인지, 사랑이 나에게 어떻게 왔는지,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가 얼마나 대단한지가 바로 성경에 모두 쓰여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어떤 것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심' 능력: 노아가 견딜 있었던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한다는 말씀에 들어있는 놀라운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노아가 1년이 넘는 방주 속에서의 기간들을 버틴 힘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노아에게 하나님이 그와 맺었던 언약에 대해 말씀하시는 이유입니다.

 

방주 안에서의 고된 현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무려 비가 40 동안이나 왔습니다. 이슬비나 보슬비도 아니고 펑펑 쏟아지는 폭우가 40 동안 계속된 것입니다. 살펴보았듯이 하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구름에서 비가 쏟아졌습니다. 물이 산을 덮어버렸다는 것이 상상이 되십니까? 우리가 흔히 보는 한여름에도 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 높은 산들이 물로 모두 덮여 버렸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혹시 40일이 끝난 후에 비가 완전히 그쳤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래서 노아가 방주의 갑판으로 올라가서 의자에서 햇볕을 즐기며 1년의 시간을 기다리며 보냈다고 생각하시나요? 즐겁고 기쁘게 화창한 날들을 누렸을까요? 제가 노아의 하루 일과를 한번 곰곰이 상상해 보았는데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우선 새벽 다섯 시에 기상하여 밤새 쌓인 1층에 있는 짐승들의 배설물들을 치웁니다. 그리고 여덟 시에 가볍게 아침을 먹은 후에 다시 2층에 있는 짐승들의 배설물들을 치웁니다. 시가 되면 1층에 있는 짐승들에게 아침을 먹입니다. 그리고 12시에 점심 먹은 , 다시 2층에 있던 짐승들에게 음식을 날라 주고 시에 잠깐 새참을 먹고 3층의 짐승들 배설물을 치웁니다. 그리고 여섯 시가 되면 저녁 식사를 하고 3층에 음식을 날라 줍니다. 아홉 시에는 창고에서 남은 물과 음식을 점검하고 시가 되어서야 약간의 휴식을 취한 , 피곤에 지쳐 잠에 듭니다. 그런데 새벽 시가 되었는데 갑자기 축사에서 문제가 생겨서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 축사를 고치고 짐승들을 진정시켜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노아가 매일매일 완수해 내어야 했던 일과였을 것입니다. 노아와 가족들 이외에는 짐승들을 돌볼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동안 노아가 모두 해내야 했습니다. 방주라고 짐승들이 먹지도 배설하지도 않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도 매일매일 조금씩 파괴되고 무너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오직 보는 것은 물뿐이었으며 모든 것은 물속에 잠겨서 파괴되고 있었습니다. 죽음이 방주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의 기다림?

그러나 성경에는 년의 기다림의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을 하셨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래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만약 그랬다면 노아는 년이 너무나도 외로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자주 노아에게 나타나셔서 위로해 주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셨더라면 노아에게는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신 같습니다. 왜냐하면, 노아가 계속해서 물이 마르는 과정을 살펴야 했고, 새를 날려 이를 확인해야 했다는 것으로 유추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정확하게 이야기를 주셨다면 노아가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에 관해서는 전혀 말씀을 주지 않으셨던 같습니다.

 

노아는 아마도 '하나님은 정말 멀리 계신 분이 아니신지, 혹은 이렇게 큰일을 겪게 하시고 자신에게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지' 하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홍수를 피해 방주 속에 있는 자신의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으며, 식량은 점점 줄어가는 것을 목격하면서 그렇게 다섯 달이나 지나갔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노아의 경험

우리는 흔히 예수님을 칭할 방주이신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방주 속에서 있었던 노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죽음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하나님은 너무나 멀리 계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심판이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으며, 그분은 결국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죽음의 물이 그분을 압도했고 삼켜 버린 같이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방주 속에서 노아는 외로움을 느꼈을까요? 불안하거나 초조한 감정이 있었을까요? 우리는 믿음 좋은 노아는 방주 속에서 매일 찬송하면서 모든 것을 이겨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노아를 보여주셨던 예수님의 생애를 본다면 예수님의 생애는 눈물의 생애요, 탄식과 아픔의 생애요, 고통이요 무시당함의 생애였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했을 , 노아의 생애도 예수님의 생애처럼 평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실패와 좌절?

예수님이 고독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실패와 좌절을 겪어야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가장 열심히 하셨던 일이 3 동안 제자를 양육한 일이었으며, 제자들을 데리고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한 일이었습니다. 제자들 앞에서 수많은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여 주셨고,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한순간에 모든 것이 헛수고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들은 모두 붙잡힌 주님을 놓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예수님처럼 실패와 좌절을 겪으신 분이 누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생애를 바쳐서 키웠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여러분을 떠나버리고 배반했던 순간을 경험했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이 실패와 좌절을 아시냐고요? 물론입니다. 정말로 아십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얼마나 약한지를 아시냐고요? 정말로 하십니다. 어떻게 모르실 수가 있겠습니까?

 

기억하심으로 얻는 승리: 노아와 예수님

그런데 이런 예수님께서 어떻게 십자가를 지시고, 히브리서의 표현처럼 앞에 있는 즐거움을 보시고 십자가를 견뎌 내셨다고 표현할 있을까요? 하나님은 노아와의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그것을 지키시고 이루어 내셨습니다. ‘내가 너와 방주 안의 모든 생명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약속을 붙잡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노아를 기억하셨으며, 노아는 하나님이 언약을 지키시는 것을, 그와 그의 인생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방주 안에서 경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의 수치를 참으셨고, 당신 앞에 있는 기쁨과 평안을 잃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억과 약속

하나님은 여러분을 기억하십니다! 여러분과 맺은 언약을 반드시 이루어 가시고, 그리고 완성하실 것입니다. 하루하루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너무나 놀라운 일이므로, 방주에 있던 노아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자신의 인생 속에서 자신을 매일 기억하시며 그의 이름을 기억하신다는 사실로 인해 방주에서의 기간을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는 순간으로 삼았으며, 그것을 즐거움으로 모든 시간들을 참게 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한 즐거움을 누리셨기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도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애는 흔들릴 있으며 우리는 어쩌면 수많은 고통과 질고 속에서 수도 있습니다. 내가 계획하지 않았으며, 생각하지도 못했던 수많은 불안과 그로 인한 우울함과 어려움을 우리는 경험합니다. 여러분을 붙잡는 것은 여러분이 우울과 어려움과 고통과 여러분이 겪고 있는 수많은 힘든 순간들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우리의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여러분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이 오늘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리고 속에서 그것을 주님이 이루어 내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약속하신 것을 지키셨다는 증거가 바로 성경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에서 나타난 번째 변화입니다.

 

2. 변화의 시작: 바람이 불다 (성령의 역사)

그렇다면 번째로 시작된 변화는 무엇입니까? 바로바람이 불었다 말씀입니다. 물로 가득 세상에 바람이 불었습니다.

 

바람과 마른 : 창조와 출애굽의 메아리

이것은 우리가 창세기 1 2절에서 다루었던 내용과 거의 비슷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더라.’ 그리고 출애굽기에서 홍해에 바람이 불어 바다가 갈라졌던 일과 비슷합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노아의 홍수의 이야기를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읽었을 그것을 들었던 출애굽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마 가슴이 벅차올랐을 것이고 탄성을 질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나오는 바람이 무엇인지 그들은 경험했었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람이 불고 그로 인해 홍해가 갈라져서 물의 벽이 만들어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마른 땅이 드러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례: 홍해를 건너는 우리의 경험

노아의 홍수 사건에서 바람이 불어서 결국 모든 땅이 말라 갔던 것처럼 그리고 3일째 창조의 날에 있었던 물이 물러나서 뭍이 생기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에서 똑같은 일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이 마르는 일은 노아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노아의 이야기, 창조의 이야기, 그리고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었던 홍해의 이야기가 여러분 자신에게도 존재합니까? 여러분도 이와 같은 일을 겪으셨습니까? 그래서 이야기를 들을 여러분의 가슴이 찌릿해지는 벅참을 겪으셨습니까?

 

놀랍게도 성경은 여러분이 홍해의 갈라진 바다를 걸었던 사람들처럼 세례를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받았던 세례가 그저 예수를 믿는 표식, 혹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으레 받아야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세례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창조의 일들과, 노아가 겪었던 방주의 사건, 그리고 이스라엘이 겪었던 출애굽 홍해의 사건과 요단강의 사건을 우리의 삶에서도 똑같이 체험하여 겪는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가슴을 떨리게 만드는 그러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세례는 여러분에게 그저 베풀어진 종교적인 의식이 아니라 여러분으로 하여금 출애굽의 홍해를 건너게 하고, 노아의 방주 속에 있었던 8명의 사람 명이 되게 하며, 여러분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모든 물의 저주를 헤쳐나가고, 마른 땅과 같은 , 하나님의 나라를 걸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받는 귀중한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찬을 통하여 여러분이 하나님의 역사 속에 있었던 일들을 진짜로 체험하기를 원하시는 것처럼 세례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일어난 일을 다시 기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직접 겪은 사람으로서 예배의 처소에서 주님을 예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놀랍지 않으십니까?

 

물이 점점 줄어듦: 점진적인 구원의 역사

바람이 불었을 때의 홍해처럼 노아의 홍수는 점점 물이 줄었다고 표현합니다. 어느 갑자기 물이 없어졌다고 표현하지 않고 물이 줄어들었다고 표현합니다. 처음에는 150일간에 걸쳐서 물이 줄어들었고, 이어서 40일간 물이 줄어들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날이었던 것입니다.

 

매일의 구원: 보이지 않는 변화

똑같은 날처럼 보였는데 사실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예수를 믿으면서 제일 힘든 하나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서 어떠한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어제와 오늘이 똑같은 죄인이며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항상 똑같은 우리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매일매일의 구원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처음 예수를 믿고기쁘다 구주 오셨네하며 찬양하던 그날이 끝이 아니라 그날로부터 여러분의 생애 매일매일마다 하나님의 구원이 일어나고 있으며 구원이 여러분 속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을 덮은 물이 노아가 때에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매일매일이 똑같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러나 물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구원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느끼고, 내가 알고, 내가 그것을 것으로 만들어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끄시고 붙들어 가시는 그것 때문에 여러분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서 여러분의 구원이 바로 구원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변하지 않을 같은 우리의 속에서 매일매일 물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방주에서의 하루처럼 우리의 인생도 다양하고 사람들마다 제각기 다릅니다. 겪어야 하는 인생의 굴곡들도 모두 다릅니다. 그렇지만 신자에게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높은 곳에 있든지 혹은 낮은 곳에 떨어졌든지,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소유하며 살든지 혹은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빈손으로 살든지 상관없이 모든 하루하루가 구원의 날입니다. 우리는 매일 새롭게 되는 날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는 하루는 신자에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제나 오늘이 똑같이 쳇바퀴를 도는 듯한 똑같은 하루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성경은 여러분의 인생에서 그냥 보낸 하루, 순간조차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바람을 부셨고, 하나님은 끊임없이 물을 줄여 나가셨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여러분을 사랑하셨으며, 하나님은 끊임없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셨고, 하나님은 끊임없이 여러분을 아끼시고 아끼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죽음은 점점 줄어들었으며, 여러분에게 생명은 점점 깊어졌던 것입니다.

 

3. 물이 줄어듦의 의미 ( 히브리 단어)

번째로 일어난 마지막 변화는 그렇게 바람이 불어서 물이 줄었다는 의미입니다. 바람이 불었다는 것은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물이 줄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물이 불어났다는 것은 개의 히브리 단어로 성경에서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씀드렸던가바르 가장 주요한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물이 줄었다는 의미로는 성경에서 아주 여러 단어가 사용되며, 단어마다 아주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사실을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노을을 표현할 아주 아름답고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준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 혹은 마음을 그윽하게 물들인다고 표현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노을을 설명하는 같은 단어일 것입니다. 이처럼 물이 줄어들었다는 단어들은 서로 굉장히 다른 단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의 인생에서 물이 줄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게 하는 그러한 동일한 일을 표현하는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하세르(חָסֵר): 죽음이 소멸함

번째는하세르 (ḥāsēr, חָסֵר, H2637)’라는 단어입니다. 단어는부족하다, 모자라다, 또는 줄어든다라는 의미의 히브리 단어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시편 23 1절의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단어는 상당히 부정적인 단어입니다. 예를 들어사랑이 부족합니다라는 문장 등에 사용되는 그런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단어 앞에 부정적인 단어가 함께 오게 되면 이중 부정이 되어, 이는 강한 긍정을 의미하는 단어로 바뀝니다. 예를 들어악한 마음이 부족합니다라고 이야기한다면 이는 아주 선하다는 뜻으로 사용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단어가 이와 똑같이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에서는 물이 함께 사용되어물이 부족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그러면 물은 어떤 의미입니까? 하나님의 심판이며, 죽음입니다. 그런데 죽음이 단어와 함께 사용됨으로써 죽음이 물러가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단어를 번역할 소멸한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 ‘물이 줄어든다라는 말은, 다시 말하면죽음이 소멸한다라고 표현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인간이므로 모두 죽음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장례식장에 참석할 때마다 나도 언젠가는 고인의 자리에 누워있게 것임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살아갈수록 죽음은 소멸하고, 우리 안에 생명이 살아나는 사람이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인생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우리는 점점 나이가 들수록 옛날에는 없었던 주름이 생기기 시작하고, 머리카락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기력도 없어지고 결국은 묘지에 묻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이상 그러한 존재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물이 줄어들듯이 죽음이 우리에게서 줄어드는 것이 신자의 인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은 죽음이 사라지고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영원한 생명을 향해 가는 사람이 것입니다.

 

저도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은 아침에 옛날처럼 벌떡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지는 못합니다. 겨우 힘들게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는데, 그러면서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아마도 겉사람이 후패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씀하시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의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생명을 향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생명이 단지 연장될 뿐만 아니라, 생명이 풍성해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상 땅에 살면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은 이상 죽음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영원한 생명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영원한 생명이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때마다 나는 새로운 삶을 살고, 새로운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경험하는 신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신자의 삶에서 일어나는 구원의 변화는 나의 죽음이 매일매일 사라지는 것이며, 영원한 생명이 항상 안에서 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죄를 향해 가지 않고 죄와 싸울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서는 이제 죽음이 사라지듯이 정죄함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상 자신과 다른 사람을 정죄할 이유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누구를 판단하고 사람을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단정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교회 내에서도 여러분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상 정죄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지를 기대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상 우리에게 정죄함이 없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우리가 이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죄가 소멸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증거입니다. 정죄함이 사라지고 죄가 죽는 것은 사랑함으로써 보여야 합니다. 죄를 짓지 않는 것으로 보여 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어려운 일이 있지만 사랑으로 우리들의 죄가 소멸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과 싸워야 하고, 나의 욕심과도 싸울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사랑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 솨카크(שְׁכַךְ): 내면의 폭풍이 잔잔해짐

물이 줄어든다라는 번째 히브리 단어는솨카크 (shakak, שְׁכַךְ, H7918) 입니다. 단어는물이 물러난다라고 한국어 성경에서는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단어는물을 잔잔하게 한다, 잠잠하게 한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 물을 물러나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물을 잔잔하게 하고, 잠잠하게 한다 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8 부분의 내용은 바람이 불어서 물이 줄어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면 물이 잔잔해질까요? 아닙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면 파도가 치고 폭풍우가 동반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바람이 불어서 물들이 물러나면서 오히려 잔잔함이 생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놀라운 것입니다. 표현 자체가 아주 재미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표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보게 됩니다. 폭풍우가 갈릴리 바다에서 일어났을 배에 타고 있던 제자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붙잡고 우리가 죽게 되었으니 살려 달라고 사정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나무라시며 바람을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파도를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그때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모든 풍랑 속에서 잔잔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예수님이 대단하신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전혀 아닙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주님의 창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창조의 명령이었습니다. 혼돈과 공허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외치신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바다를 향해 외치시는 것입니다. ‘잔잔하라!’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수많은 유혹과 욕심을 향해 주께서 외치시는 것입니다. “유혹과 욕심이여, 잔잔하라!” “주께서 새로운 마음을 창조하신다, 잔잔하라!” 여러분에게,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에 주님께서 선포하는 선언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말씀을 여러분 자신에게는 설교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것은 언제나 밖으로 나오게 하여 남에게만 주는 말씀으로 여기십니까?

 

말씀은 우리들 자신에게 하는 설교여야 합니다. 교만하고 욕심을 부리며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나의 마음에 대하여 선언하십시오. “주께서 말씀하신다, 나의 욕심이여, 잠잠하라, 나의 교만이여, 잔잔하라!” 주님이 바로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설교가 되게 하십시오. 선언은 안에 있을 있는 모든 불안과 욕심, 그리고 교만들이 없어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새롭게 창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창조의 단어이며, 욕심으로 가득 우리의 마음을 향하여 잔잔하라고 말할 ,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이제는 사랑하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새롭게 우리들 속에 창조되는 하나님의 사랑의 창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가 우울하다면 우울한 마음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신 하늘의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 동행하므로 내가 외롭지 않으며 주님이 나와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진정 우리의 속에서 기억하고 알게 되었을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영혼이 들어야 설교를 여러분이 여러분의 영혼에게 말해 주십시오! “나의 영혼이여, 잠잠하라, 하나님만을 바라라!” 그래서 방주가 아라랏 산에 멈추었을 성경은 그것을 머물렀다고 표현하나 정확한 번역은안식하였다입니다. 창조의 놀라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을 방주는 산에서 드디어 안식하게 것입니다.

 

. 슈브(שׁוּב): 죄가 한계로 돌아감

물이 줄어들었다라는 뜻의 마지막 단어는슈브 (šûḇ, שׁוּב, H7725)’입니다. 단어는 굉장히 독특한 히브리 단어입니다. 단어의 원래 뜻은돌아간다입니다. 이상한 단어입니다. 물이 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일단은회개한다라는 단어로도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글 성경에서는 그냥물러간다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정확한 뜻은 원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구절이 잠언에 있습니다. 잠언 8 28-29절입니다.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있게 하시며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šûḇ라는 단어는 바로 잠언의바다의 한계를 정해서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한다라는 의미입니다. 물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땅을 위해서 모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서 나라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을 가질 때까지 우리들은 생육하고 번성하여야 하며 바다가 아닌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다를 모으셨고 한계를 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홍수에게 다시 한계로 돌아가라고 물에 대해 명령하신 것입니다.

 

물이 지금 세상을 삼킬 것처럼, 우리를 부술 것처럼, 우리를 끊임없이 정죄하고, 유혹하기도 하며 우리의 자신감을 무너뜨리고 포기하게 만들고, 패배 의식 속에 침잠하게 만들기도 하며, 수많은 불만과 불평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들지라도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에게 지지 말라, 내가 물의 한계를 정하고, 그것이 있어야 곳에 있게 것이며 그로부터 너희를 자유하게 것이다. 내가 너희를 세울 것이며 진정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임하게 것이며, 너희와 함께 것이다!’

 

그리스도 안의 창조: 한계 없는 인생

다음 30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니라.” 여기서 창조자는 당연히 지혜자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창조자이셨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할 예수님도 창조자로서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아시겠습니까? 그리스도가 창조자이시므로 우리도 그분 안에서 창조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인생이 여기서 끝나고 모든 것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이것이 우리들의 한계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우리는 한계가 없는 존재입니다. 죄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슬렀던 인간의 죄만이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제 한계를 가진 자가 아니라, 창조주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여러분의 인생을 오늘도 매일매일 창조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이 여러분에게 약속하신 것은 우리가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너무나 기뻐하는 사람이 되는 하루를 여러분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한계를 스스로 긋고 나의 인생을 이렇게 밖에는 없었으며 여기 까지가 한계인가 보다 라고 생각할 없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여러분에게 그렇게 속삭인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여러분의 귀에 들리는 성령 하나님의 창조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내가 너와 함께 우주를 다스릴 것이며 너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창조할 것이며 너의 인생을 하나님 아버지를 닮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성령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인생으로 창조하고 창조하고 창조할 것이며, 새롭게 하리라!” 그것이 여러분의 진정한 인생입니다.

 

우리의 참된 정체성: 하나님의 기쁨, 창조자

사랑하는 여러분, 악은 반드시 자기가 받을 심판의 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죄는 자기의 한계를 절대 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가 승리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강해 보여도 그들은 그들의 길을 벗어날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했으며 진리 안에서 자유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땅에서뿐만 아니라 영원히 그러한 영광과 자유를 누릴 자로 구원받았습니다. 만약 그것을 여러분이 경험하며, 그리스도를 안다면 이보다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여러분, 자리로 속히 오십시오.

 

창조자 되신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매일을 창조하십니다. 앞에서 기뻐하십니다. 뭍이 드러나고 우리가 거할 땅을 만드시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시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지금 일하십니다. 그래서 창조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혼자 하셨고, 하나님이 대단하시다고 보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이상 우리는 창조를 우리가 피조물인 것처럼 보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는 창조 사역에 같이 참여한 사람들이며, 우리가 새롭게 되는 사람들이며, 날마다 새로움을 받는 새로운 피조물이요, 새로운 창조자요,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함께 창조를 누리는 하나님의 기쁨이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입니다.

 

마치는 기도

기도합시다! 세상에 보이는 풍파에 놀라지도 실망하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고통이 우리를 삼킬 없습니다. 나의 실패가 나를 삼킬 없습니다. 우울과 불안이 나를 삼킬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겪으셨던 고통이 주님을 삼키지 못했으며, 주님이 겪으셨던 탄식이 주님을 삼키지 못했으며, 주님이 겪으셨던 죽음조차도 주님을 삼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저희가 믿음으로 주님께 외칩니다. 주님, 세상의 어떤 것도, 어떤 상황도 우리를 삼킬 없으며 오로지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새롭게 됨을 믿습니다. 주여 우리를 새롭게 창조해 주옵소서. 주님의 창조를 따라 우리도 주와 함께 창조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우리의 창조자이시며 우리가 주님의 창조의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여 주옵소서. 나를 건지신 주님, 오늘도 건지시고 건지실 것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