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123-요셉의 꿈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37장 5절로부터 11절 까지 입니다.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아멘.
예배의 진정한 주체,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흔히 예배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엄밀히 말해 우리의 어떤 예배도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에서 예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늘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의 찬양은 그리스도의 찬양에 동참하는 것이고, 우리의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에 함께 동참하는 것이며, 우리의 기도도 그리스도의 기도에 우리가 동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예배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며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예배를 주관하시고, 그분 자체가 이 예배의 주체이십니다. 그분께서 찬양하시는 그 찬양에 우리도 함께 동참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어떤 찬양으로도 주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순전한 마음이 없으며, 이 땅의 어느 누구도 오직 하나님만을 향한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걱정과 아픔과 눈물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여러분 자신만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하고 있는 여러분을 보시기에 여러분의 찬양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시고 또한 함께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다시 한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저 '이 예배에서는 설교가 제일 중요하니 열심히 듣자'는 마음이 아니라, '나는 어떻게 이 그리스도의 계시, 곧 그리스도의 말씀에 함께 참여할 것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그 말씀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주님이 내게 허락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더욱 깊은 마음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요셉의 꿈, 하나님의 계시
우리가 계속해서 창세기를 함께 보는 동안, 마지막 족보인 야곱의 족보에 이르렀습니다. 그 내용은 상당히 깁니다. 37장부터 50장까지가 야곱의 족보를 다루고 있으며, 이 이야기의 주된 인물은 요셉과 유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죠. 지난주에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요셉의 이야기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드러나는 그들의 불신앙과 우상, 그리고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모습들을 보아야 합니다. 이렇듯 변함없이 불완전한 아브라함의 가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함께 기도했던 것처럼,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끝까지 지키시고 우리를 인도하며 붙드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이 변치 않으신다는 것을 알기에, 요셉의 이야기는 비로소 올바르게 읽히며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한 가지 더 말씀드렸듯이, 요셉 이야기의 특징 중 하나는 기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대단한 기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기적과 같습니다. 평범한 매일의 일상처럼 보이는 일들, 물론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평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었죠. 그는 많은 고난을 당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감옥을 지진으로 무너뜨리거나 특별한 기적을 행하시기보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이는 그 일들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이를 보며 여러분과 저도 나의 하루하루가 절대 헛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답고 기적과 같은 인생을 만들어 내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공식적인 명칭
여러분, 오늘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의 인생은 아름다우십니까? 때로는 우리 자신에게도 만족하지 못할 만큼 초라해 보여서 내가 이렇게 사는 것 자체가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주님께서는 변함없는 사랑으로 여러분을 붙드셔서 지금 '아름다운 자'라고 부르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의 공식적인 명칭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딸입니다. 여러분의 공식적인 명칭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마음이 찔리지 않으세요? 거룩한 하나님의 무리라 하여 우리는 성도라고 불립니다. 영어로는 '세인트(Saint)'라는 말이죠.
이 동네를 다니다 보면 '세인트 루크 처치(St. Luke's Church)'처럼 이름 앞에 '세인트(Saint)'가 붙은 교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바로 성 누가 교회죠. 여러분의 이름 앞에도 똑같이 '세인트'가 붙는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놀라운 일을 하나님이 행하셨는데, 여러분과 제가 어찌 주님께 나아가 예배하는 기쁨을 놓칠 수 있겠으며, 우리의 삶을 다시 보는 것이 기쁨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도 오늘 요셉의 꿈 이야기는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그 꿈을 요셉이 두 번 꾸었는데, 이 꿈이 요셉의 인생 전체를 결정짓게 됩니다. 이 꿈이 없었더라면 그의 인생은 그렇게 풀리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래서 어떤 학자는 하나님께서 이 꿈을 통해 꿈의 주인이 요셉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형들의 미움과 꿈의 진정한 의미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요셉이 꾸고 싶어서 꾼 꿈이 아닙니다. 요셉이 이 꿈을 향해 달려간 것도 아닙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렸듯이, 요셉은 형제들이 자신에게 절할 때에야 비로소 '아, 내가 꾸었던 그 꿈이 이것이었구나' 하고 기억해냈습니다. 그전까지는 잊고 지냈던 것입니다. 그는 이 꿈을 자기의 비전으로 삼은 사람이 아닙니다. '나도 언젠가는 모든 형제들이 나에게 절할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꿈을 품고 모든 것을 견뎌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리려 했고, 그래서 아들 이름도 '잊어버림'이라는 뜻의 므낫세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결국 형제들이 그에게 와서 절하는 일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꿈을 꾸었다는 것이, 곧 자신의 인생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꿈의 주인공이시며 요셉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원하는 인생을 살라고 '너 이렇게 될 테니 잘해 봐라' 하신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조심하고 이렇게 저렇게 해서 결국 총리가 될 거야'라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요셉은 꿈을 꾸었으니 총리가 되어야 한다고 나아간 것이 아니었죠. 오히려 그 꿈을 꾸었다는 것은 '아, 내 인생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시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 꿈이 그의 인생을 결정하게 한 것입니다.
꿈을 두 번 꾼 이유
이것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증거는 요셉이 꿈을 두 번 꾸었다는 점입니다. 내용은 거의 비슷하지만, 하나는 하늘의 스케일로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절하는 꿈이고, 다른 하나는 땅의 스케일로 곡식 볏단들이 절하는 꿈입니다. 하나는 하늘에서, 하나는 땅에서 이루어졌으니, 이는 천지 간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말하는 것임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같은 내용의 꿈을 두 번이나 꾸었을까요? 여기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자세히 읽어보면, 요셉이 꾼 꿈 외에 다른 사람들이 꾼 꿈들도 전부 두 번씩 나옵니다. 왜 두 번씩 나올까요? 요셉은 바로에게 이렇게 설명합니다. 창세기 41장에 나오는 말씀인데요,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이유는 하나님이 그 일을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두 번 꾼 것에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신 것이며, 속히 행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요셉이 꾼 꿈도 사실은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시려고 꾸게 하신 꿈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미움의 뿌리, 하나님에 대한 원망
형들이 이 꿈 이야기를 듣고 미워했다는 것은 단지 개인적인 미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엄밀히 말해 형들은 요셉이 그렇게 되는 것을 시기하고 미워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라고 한 형들의 반응은 요셉에 대한 불만으로 보입니다. 또한 아버지가 왜 요셉만 사랑할까 하는 시기와 미움처럼도 보이죠.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이것은 단순한 요셉에 대한 미움과 시기가 아니라, 요셉의 인생을 그렇게 섭리하시고 그 일을 행하시려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인 것입니다.
우리도 그것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형들도 아마 몰랐을 것입니다. 자신들은 그저 요셉에 대한 불만을 터뜨린다고 생각했겠죠. 우리도 그럴 때가 많지 않습니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들, 또 살아가면서 겪는 일들에 대해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왜 저 사람은 복이 많은데 나는 왜 이 복이 없을까?'라고 말할 때, 사실은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역사하시는 많은 일들에 대해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뿌리 깊은 우리의 죄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사실로, 오늘 본문 8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창세기 37: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왕이 아닌 구원자
이 구절을 그냥 읽으면 지나칠 수 있지만, 여기 형들은 '너의 꿈 때문에' 너를 더 미워한다고 말하면서도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두 가지를 일부러 분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꿈을 이야기한 것 외에 다른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단순히 꿈 이야기에만 반응한 것이 아니라, 그 꿈 자체를 미워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꿈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네가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라고 해석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요셉이 나중에 총리가 되는 이야기를 알고 있기에, '아, 그래, 그가 총리가 되어 우리를 다스리니까 그렇게 되겠지'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사실 형들의 해석은 틀렸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직접 다스린 적이 없고, 그들의 왕이 된 적도 없습니다. 심지어 해와 달과 별의 이야기에서도, 요셉 앞에 절을 한 사람들 중에 형들은 있었지만, 그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절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형들이 이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형들이 "네가 우리의 왕이 되어 우리를 종으로 삼으려 하느냐?"라고 이야기한 것 속에는 그들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은 요셉이 왕이 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물론, 이것이 단순히 요셉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요셉을 통하여 다스리시는 것을 싫어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왕이 되는 것을 거부하려고 했던 것이죠.
그들의 마음속에 담긴 이 꿈의 본래 의미는 그들의 해석과 다릅니다. 이 꿈은 사실 요셉이 나중에 말하는 것처럼, 요셉이 왕이 되는 꿈이 아니라 요셉을 통해 형제들을 구원하는 꿈입니다. 요셉이 구원자가 되는 꿈인 것입니다. 이는 '너희를 구원하겠다'는 꿈이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 같지만, 신약에서 너무나 잘 볼 수 있는 구절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으로 오셨습니까? 구원자로 오셨는데도 그들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말하며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보았습니까?
자기들을 다시 종으로 삼거나 로마의 종으로 만들려는 존재처럼 예수님을 생각하고, '왜 우리를 해방시키지 못하느냐'는 이유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로마를 심판하러 오신 것도 아니고, 그들을 종으로 삼으려고 오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구원하기 위해 나의 목숨을 주러 왔다'고 하셨는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그러한 면에서 우리가 읽어갈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와 가까워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형들이 얼마나 오해했는지, 그들이 무엇과 대적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 그 후에 나오는 20절 말씀입니다.
창세기 37:20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이 구절은 그들이 '하나님이 요셉에게 꾸게 하신 그 꿈을 보면서, 하나님, 요셉이 죽어도 이 일이 일어날까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실질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으며, 구원자로 오신 주님이 아니라 자기들이 종이 되는 것을, 즉 '내가 왕이 되고 싶은데 하나님이 왕이 되신다'는 그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것처럼, 구원자인 요셉의 꿈을 그 꿈대로 해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물론 어떤 분은 '그럼 요셉이 예수라는 말입니까?'라고 물으실 수도 있겠죠. 물론 아닙니다. 요셉이 어떻게 예수가 되겠습니까?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
요셉의 생애를 보면 우리는 구약을 보는 매우 중요한 관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중 하나는 요셉의 생애가 굉장히 불완전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10대였지만 무례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성숙함이 전혀 없었고, 사실은 형들에게 자신이 이 집안의 장자가 되기에 마땅하다는 것을 드러내려 노력하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일부러 채색 옷을 입고 형들이 일하는 곳에 갈 정도로 형들을 무시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습니다. 그는 부족한 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메시아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동시에, 이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무례했던 요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약속의 후손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이 그랬듯이 요셉은 메시아는 아니었지만 그를 통해 메시아를 보여주는 그림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생애는 단순히 개인적인 삶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하여 참 구원자가 어떤 분으로 오실지를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을 예표하는 인생이었던 것입니다. '그저 요셉처럼 살면 우리 아들도 총리가 될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니엘처럼 기도하면 우리 자녀도 사자굴에서 건짐을 받아 바벨론에서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들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어떤 고난을 받으시고 어떤 영광을 누리게 되실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그림자가 사실은 이 이야기의 가장 중심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는 요셉에게서 끝날 수 없고, 앞으로 오실 메시아를 통해 온전한 요셉의 삶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마지막 요셉'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믿음의 여정, 그림자를 따라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마지막 모세, 마지막 다윗이라 부릅니다. 예수님은 동시에 마지막 아담이 되십니다. 인간이 모두 실패하며 겨우 그림자만을 보여주었던 그 모든 일들이, 그것을 온전하게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와서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요셉, 다윗, 그리고 모세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곳에서 출발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구약의 모든 성도들은 제사 속에 있었던, 자신을 위해 죽으셔야 했던 어린 양,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의 삶에서 비록 인생으로서 실패하고 좌절하고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 속에서 보여주신 메시아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오실 그리스도를 소망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구원은 율법을 지켜서 얻은 것도 아니요, 자기 자신의 의로 얻은 것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분명히 말했듯이, 그들의 구원은 믿음으로 얻은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습니다. 무엇을 믿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위해 준비하신 메시아를 믿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지금 제가 말씀드린 이 내용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언제 모세가 예수님을 알았겠습니까? 언제 모세가 '메시아'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한 적이 있습니까?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나와 같은 선지자가 올 것이고 그가 너희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인도하게 될 것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바로 그 메시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가 이집트의 모든 보화보다 그리스도를 더 귀하게 여겼다." 우리가 출애굽기를 공부하며 알 수 있듯이, 그 이야기는 '정말 모세가 그랬을까?' 하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놀랍습니다.
우리의 시선, 진짜를 향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자신 있게 말합니다. 왜냐하면 모세가 그리스도를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인생 전반부는 자신의 힘과 욕심, 능력을 의지하며 이집트의 왕자로서의 힘을 과시하고 '내 힘으로 내 민족을 구원하리라'는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그가 그 모든 것을 버리게 된 것은 바로 그리스도 때문이었다고. 여러분과 우리의 모든 인생이 오늘도 어쩌면 좌절 속에 있을 것입니다. 일주일 내내 쳇바퀴처럼 돌아갔던 하루하루를 생각하며 '내 인생은 결국 이렇게 매일 똑같은 일을 하다가 짜증 내고, 화를 내다가 또 기뻐하면서 하루를 보내는구나. 그저 좀 좋은 일, 재미있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바라지는 않습니까? 인생의 기쁨이 얼마나 없으면, 다 가짜 이야기인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으시겠습니까?
여러분,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드리는 이야기는 진짜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별로 놀라지 않으십니다. 가짜가 너무나 많다 보니 이제는 진짜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도 무덤덤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진정한 소망이 되는 이야기, 진정한 기쁨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요셉의 꿈은 첫째로 구원자의 꿈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정확히 알지 못했던 형들은 오히려 자기들이 그 꿈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주시기 위해 요셉에게 꿈을 주셨지만,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주께서 여러분을 위해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라는 그 말에 여러분은 '나는 지금 당장 필요한 거라도 좀 주셨으면 좋겠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까지 가신 건 괜찮고, 그저 내일 내가 복권을 사도 되는지나 좀 알려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그 주님의 십자가를 보면서도 '내 인생 좀 어떻게 펼 수 없을까'만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형들처럼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이 사건을 제대로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꾸고 있는 꿈이 무엇인지 아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지금 듣고 있는 말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그저 '당신에게는 이러한 옵션도 있습니다. 예수라는 분을 믿으면 당신의 인생이 이렇게 변할 수도 있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닙니다. 이 그리스도가 바로 여러분 인생의 진정한 답이며, 여러분을 살리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영원한 계시의 꿈
요셉의 꿈은 동시에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구나'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구나.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이고,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며 꽃 피우게 하실 것이며, 하나님과 함께 가는 길이구나. 내 인생을 홀로 두지 않으시는구나'라는 것을 마침내 고백하는 것이 바로 요셉의 꿈입니다. '나도 그런 꿈을 꾸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이 꿈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이 꿈은 지금 '계시'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계시'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 보여준다는 뜻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꿈을 두 번 꾸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정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계시를 아십니까? 여러분에게는 계시가 있습니까? 여러분에게는 꿈이 있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대로 여러분은 정말 꿈을 꾸십니까?
우리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꿈은 하나님의 계시인데,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무엇이 궁극적인 계시가 되었습니까?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옛적부터 선지자들이 그토록 이야기하고 여러분에게 알리려 했던 그 계시가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통해 여러분 안에 거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계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꿈이요, 그것이 여러분의 계시 전체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 그리고 그리스도의 삶이 여러분 모두의 계시입니다. 여러분은 그 꿈을 꾸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너무나 많은 꿈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내가 너의 기도를 들을 것이다.' 이 약속이 우리의 계시입니다. 여러분은 그 꿈과 미래, 그리고 그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는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이것이 바로 여러분의 꿈이며, 주님의 계시입니다. "내가 너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너를 구원할 것이며, 너는 이제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으로 삼았다. 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꾸는 계시의 꿈이며, 하나님의 계시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약속들입니다.
사라질 영광과 영원한 영광
여러분, 요셉에게 주어졌던 꿈과 영광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요셉에게 절했던 형들도 다 사라졌고, 총리가 되었던 그의 영화도 지금은 찾을 수 없습니다. 모세의 영광도 마찬가지로 사라졌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듯이 솔로몬의 영화도 들꽃 하나보다 못합니다. 모두 다 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았을까요? 여러분과 저는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았던 사람들과 달리, 이미 오신 그리스도로부터 출발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십자가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스도의 모든 계시가 우리 인생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사라질 영광이 아니라 영원한 영광을 함께 누리며 살게 된 사람들입니다. 모든 것이 사라졌지만, 우리가 누리고 있는 그리스도는 영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사라질 영광을 받았던 모세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 영광이 사라지는 것을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썼다.' 마치 그 영광이 영원히 갈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사라져 버렸습니다.
수건을 벗고 진짜를 보는 삶
여러분, 이 대목에서 우리 모두 놀라야 하는 것 아닐까요? 여러분과 제가 영원한 것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기도해서 응답받았던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다 사라졌습니다. 그토록 하나님께 애통하며 간절하게 매달렸던 그 순간들도 지금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나갈 것들을 여전히 붙잡고 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날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들은 여전히 요셉과 아브라함을 붙잡고, '그 요셉처럼 우리도 이 나라에서 총리가 되어볼까?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 복을 누릴 수 있을까?'를 보고 있습니다.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그들은 이해를 못 하는 것입니다. 형들의 마음이 그랬습니다. 형들은 그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주신 구원을 본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의 종이 되어 살겠구나, 내가 왕이 되지 못하는구나' 하며 원통해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너의 인생을 나에게 달라'고 하실 때, '하나님은 독재자 아닙니까? 내 인생은 내 것인데 왜 하나님이 다 달라고 하십니까?'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내 인생을 나에게 달라'고 하시는 말은 '내가 너를 구원하리라. 내 목숨을 너에게 주겠다'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그 진리에 수건을 덮어버립니다. 율법과 우리의 능력, 우리의 힘에 의지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자유와 영원한 생명
그러나 여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우리는 모두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봅니다. 여러분이 지금 누리고 있는 것, 보고 있는 것은 주님께서 영원 전부터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하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수많은 세월 동안 선지자들이, 심지어 아브라함도 보기를 원했던 그 일이 지금 우리에게 이루어져 여러분은 그 영광을 직접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우리 가운데 함께하시는 주님. 단 한 번도 이 땅에서 하나님을 담을 수 있는 존재는 없었습니다. 성전조차 하나님을 담지 못했습니다. 솔로몬도 "어찌 이 성전이 주님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하나님의 처소로 삼으셨습니다. 이 영광을 지금 우리는 보고 있고, 누리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리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분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이 완전하신 주님, 말씀이신 그 주님이 여러분의 꿈이 되십니다. 우리의 계시, 우리의 말씀이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그 계시를 기억하고 있는 한, 그 말씀을 듣고 있는 한, 그 말씀이 나의 말씀인 것을 알고 있는 한, 여러분의 인생은 주님의 것이며, 여러분의 생애 주인공은 바로 영원하신 지존자 하나님이십니다.
기도합시다.
사랑의 주님,
저희가 이제 주님의 말씀을 들었사오니, 저희 모든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다시 고백합니다.
우리가 형들처럼, 심지어 야곱처럼 이 말씀을 듣고도 내 욕심대로만 해석하여 원하는 말씀만을 들으려 하지 않게 하옵시고, 주님.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주신 주님, 나의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되실 뿐 아니라 가장 선하고 아름답게 만드시는 그 주님 앞에 우리의 무릎을 꿇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