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강해 설교집/창세기 강해

창세기-2-하나님의 영

lampchurch 2025. 4. 16. 01:59

하나님 말씀은 창세기 1 1절에서 2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울여 듣겠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아멘.

 

지난 시간 요약 창조의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천지는 하늘과 땅이지요. 그리고 하늘과 땅을, 저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말은, 모든 우주와 세계 안에 하나님만이 홀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하는 선언입니다. 다른 신은 없습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 모든 만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가 가려고 하는 마지막 길은, 성경에서 그것을 통일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에베소서 1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통일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하나로 모은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머리가 되셔서, 우주와 세계를 온전하게, 그리고 완전하게 다스리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신약에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당연히 창세기에 있는 말씀과는 다른 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인간의 타락을 전제로 하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창조를 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혼란 속에 있었고,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었던, 이러한 인간과 세상이 그리스도 때문에 안에서 화목하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과 화목해서 다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을 머리로 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를 다스리신다는 말이죠.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구원, 혹은 새로운 창조입니다.

 

분명히 옛날 창조, 우리가 말하고 있는 지금 창세기의 창조는 죄가 나타나지 않는 창조지만, 그러나 창조의 목적은 다르지 않습니다. 만물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만물이 하나님의 완전한 다스림 속에 들어가는 , 이것이 바로 창조의 목적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왜냐하면 2장이 되면 안식에 대한 부분이 나올 부분을 우리가 다시 한번 아주 중요하게 다루기 때문입니다.

 

1절과 2절의 연결: 보이는 세계의

그래서 2절을 보시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그랬지요? 그러니까 땅이라는 말은, 앞절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보이는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하나님께서는 보이는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하셨고, 바로 기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창세기 1장의 2절과 1절은 서로 연관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1절과 2절은 서로 따로 떨어져 있는 아니라, 1절에 있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받아서, 그중에 보이는 세계는 이렇게 창조되었다는 것을 2절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조의 과정성: 혼돈, 공허, 흑암,

그리고 혼돈과 공허라는 것은 땅이 어떠한 상태에 있었는가 하는 상태를 말해주는 것이고, 그리고 거기에 있는 흑암과 물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것이 존재하고 있는 그런 존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빛이라는 것은 생겨나라, 나타나라, 있으라이런 말씀을 통해 만들어지기 전이었습니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이요, 전능하신 분이시죠? 그러면, 그냥 처음부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빛이 있으라!” 그래도 멋있잖아요, 그렇죠? 얼마나 자연스러워요? 그런데 성경에 2절이 다음에 들어가는 바람에, 상당히 중요한 내용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있게 되었습니다.

 

창세기를 읽어 보시면, 창조 기사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 하고 빛이 생기고, “!” 하고 바다가 생기고, 계속해서 !” 하고 하늘이 생기고, “!” 하고 땅이 나오고 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뭔가 하나님이 작정하신 단계(step) 있어요. 과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흑암이 있고, 물이 있고, 물이 나뉘고, 이러한 과정을 거치십니다. 하루에 하시는 것이 아니에요. 성경은 그것을 6일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하루에 하시기가 힘드셔서 그러셨을까요? 그건 아니지요. 그러니까, 안에는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창조라는 것에는 어떠한 과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혼돈과 흑암은 창조의 재료가

그러면, 우리가 생각할 있습니다. “!,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천지를 창조할 재료를 먼저 만드셨구나..., 뭔가 물질을 먼저 만드시고, 물질로부터 우리가 있는 세상을 만드신 것이구나!” 이렇게요... 그러나 그것은 틀렸습니다. 여러분! 처음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이잖아요. 빛이 어둠에서 나온 건가요? 아니죠. 빛이 흑암에서 나왔습니까? 아니면, 빛이 물에서 나왔나요? 아닙니다! 빛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따라서 처음에 나왔던 혼돈하고 공허한 땅과, 흑암과, 물은 절대로 창조를 위한 재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창조의 일부가 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학적 해석의 한계와 위험

우리는 창조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많은 물질들이 어디서부터 나온 것일까? 하고 항상 생각해 왔습니다. 짐승은 어디서 나왔고, 자연은 어디서 나왔나, 하는 근원에 대해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는 성경을 시대마다 다르게 읽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시대마다 가지고 있는 지식의 양에 따라 성경을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죠. 다시 말하면 과학적으로 조금씩 발전할수록 우리가 성경을 읽는 방법이 자꾸 달라지는 이유는, 과학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려고 하는 태도를 우리가 자주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태도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과학적인 성경 읽기로 인해서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원래의 의미를 종종 놓치게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책은 과학자들이 읽고 그것을 이해하라고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이 읽고, 여기서 과학을 발견하라고 책이 전혀 아닙니다.

 

이제 앞으로 있을 창세기 설교를 통해서, 우리가 매일매일의 창조 기사들을 하루씩 하루씩 살펴보면서, 과정들을 자세히 소개해 드릴 텐데요, 창조의 내용을 과학으로 읽고 이해하려는 시도가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그것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이론들도 따라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성경 이해에서도 이러한 접근 방법을 갖기 쉽게 되었습니다.

 

간격 이론(Gap Theory)

창조 기사를 읽고 우리는 우선 이런 질문을 제일 처음 갖게 됩니다. 성경에 분명히 6 동안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밝히시지만,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혹은 뉴스나 tv 나오는 수많은 과학자들의 주장처럼, 적어도 우주는 130억에서 140 년에 걸려서 지어졌고, 지구도 35억에서 40 년의 기간을 거쳐서,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모습을 대충 갖추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그러면 당연히 우리는 어느 것이 맞는 것이냐는 질문이 생겨나게 됩니다. 6일이냐 아니면 몇십, 몇백억 년이냐? 그래서 괴리가 성경을 읽을 , 굉장히 걸림돌이 됩니다.

 

지금 성경을 읽는 저희들처럼 옛날의 독자들도 비슷한 마음이었습니다. 지질학이 발달하기 시작한 19세기 말부터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해할 없이 크나큰, 6일과 몇백억 년의 괴리를 설명하기 위해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해석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1 1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나오고, 다음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게 되었다고 나왔으니, 사이에 분명히 완전히 다른, 어떠한 단절의 기간이 있지 않겠느냐? 처음에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가 있고, 다음에 땅이 혼돈과 공허가 되는 과정이 있었다라고 설명을 거예요.

 

이러한 주장이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1814, 영국 에딘버그 대학 강연에서 신학교수이신 토마스 차머스(Thomas Chalmers) 목사님께서 이러한 이론을 발표하신 이후입니다. 당시에 있었던 많은 지질학 연구를 보면서, 이분은 창세기를 조금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는 마음이 생겨났고, 본인에게도 굉장히 어려웠던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의 의문에 대한 해결 방법으로 이런 이론을 제시하게 되었습니다. 이론에 따르면, 우선 창세기 1 1절은 창조이며, 그리고 후에, 하나님의 천사가 타락하여 사탄이 되었고, 타락한 천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처음에는 선하게 창조된 땅이 상태대로 존재하지 못하고, 혼돈하고 공허하게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럴듯하지요? 제가 주장을 소개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분이 창조를 이해하고 설명하려고 했던 의도나 생각들을 여러분께 이해시켜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라진 이론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굉장히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구는 혼돈과 어둠의 세계 속에서 다시 빛이 있으라하고 말씀하시니까, 번째 창조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리지날 창조 다음에 번째 창조가 나오는 것이죠.

 

하지만, 애석하게도 해석이 깊어지면, 이러한 해석으로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천사가 타락한 사탄이 지금 세계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었으며, 이에 대한 심판으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완전히 섬멸하기 위해서 지구를 만드셨고, 예수님은 사탄을 멸하기 위해 오신 것이며, 그리고 예수님이 사탄을 멸하는 것을 도와주는 존재로 인간이 창조되게 되었다.” 이것은 어떤 이단 교리의 가르침과 아주 유사한 주장입니다. 그러니까 지구는 사탄으로 인해서 만들어진 것이 되는 것이고, 사탄을 멸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탄을 멸망시키는 것은 맞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 예수님이 땅에 오신 목적은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그런 식으로 해석해 버립니다. 물론 이론의 깊은 설명을 위해서 수많은 다른 이론들을 계속해서 가져오게 됩니다. , 창세기 1 1절과 1 2 사이에다가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집어 넣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 당시에, 혼이 있고 육체는 있지만, 영이 없는 인간을 만드셨으며, 그래서 수많은 인간들이 그때 이미 존재했고, 그리고 그것들은 결국은 죽을 것들이었으며, 그리고 아담만이 영을 가지고 탄생한 인간이다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번째 창조가 있었다는 주장이죠.

 

이론은 당시 굉장히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도 내용이 굉장히 유명해지기 시작했는데, 시기인 1876년에 펨버(G. H. Pember) 목사님께서 '지구의 초기 시대 (Earth’s Earliest Ages)' 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리고 저서를 통해 내용들이 더욱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것이 미국에 퍼지기 시작한 계기는, 유명한 스코필드 성경 (Scofield Reference Bible)으로 인해서입니다. 스코필드 성경은 스코필드 박사라는 분이 성경 본문에 짧게 주석을 달아서 배포한 주석 성경입니다. 얼마나 유명해졌냐하면, 거의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책을 샀을 정도입니다. 주목해야 점은 바로 성경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세대주의적 성경 해석을 책이라는 점입니다. 창세기 해석에 있어서도,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1절과 2 사이에는 단절이 있고, 단절을 (Gap)으로 표현했으며, 그래서 이를 간격 이론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간격 이론은 이후에 굉장히 널리 퍼지게 되었고, 이론에 의거해서, 사람들은 사탄의 심판으로 인한 처음 창조의 파괴와, 인간을 위한 번째 창조가 있게 되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론이 보수적이고 근본주의적 성향을 지닌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인기를 있었던 이유는, 이론을 통해서는 6 창조를 포기하지 않고서도, 창세기 1 1절과 2 사이 아주 시간을 집어 넣을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1 1절에서 처음 창조가 끝난 수십억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6 동안 지구를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지금 지질 학계에서 말하고 있는 수많은 화석들이나 여러 가지 발견되는 역사의 흔적들은 이론을 근거로 전혀 문제없이 창세기에 포함될 있다고 해석을 있게 것입니다.

 

그대로는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창조 기사들 사이의 시간의 간극을 설명함으로써, 지질학적으로 발견되는 많은 격변들이나 혹은 화석들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입장은 의외로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예를 들면 CS 루이스나 아더 핑크 목사님도 역시 간격 이론을 부분적으로나마 받아들이셨고, 율법과 복음(Law Or Grace)”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디한(M. R. De Haan) 이란 분이 있습니다. 그분도 역시, 창세기에서는 간격 이론을 받아들였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6 창조의 이해와 크게 충돌하지 않고, 지질학이나 또는 과학에서 말하는 오래된 지구의 시간을 받아들일 있기 때문에 그분들은 그것을 그렇게 어려움 없이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간격 이론의 문제

그분들이 단순히, 대중적이고 그럴듯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간격 이론에서 설명하는 시간의 틈이 과학이나 지질학의 증거와는 병치하기 힘든 창세기의 창조를 설명하는데 있어서는 아주 나쁘지 않다라고 생각해서 이론을 받아들인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그분들은 지속적으로 성경적인 증거를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면, 본문 말씀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혼돈과 공허를 상태를 나타내는 'be' 동사로 번역하지 않고, 'become'이라는 의미를 첨가시켜 어떤 변화를 설명할 있는, “땅이 혼돈해지고, 공허해졌다라고 번역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번역함으로써, 지금 번째 창조가 사탄 때문에 완전히 혼돈과 공허로 빠지게 되었다라고 설명했으며, 다른 여러 성경 구절들, 예를 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예레미야 4장이나 이사야서 이해에서도, 이러한 간격 이론의 시간 구분 방법을 통해, 자연스럽게 2개의 창조로 성경 구절에 나타난 난해 구문을 해석했고, 이러한 방법으로 쉽게 성경과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설명할 있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사탄의 타락도 설명할 있었고, 지질학이 말하고 있는 그런 시간도 설명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이러한 간격 이론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창조 기사를 아주 매끄럽게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선, 제일 중요한 것은, 성경 어디에서도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지지하는 구절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을 보시면 분명하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엿새 동안에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뭐라고 말하시냐면, 엿새 동안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시고, 창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창조를 얘기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면, “내가 번째 창조하는 여섯째 날에…” 이라든지, 아니면 첫째 창조 하지 않았던 이러한 것들을 내가 이루었다…” 라고 하실 텐데, 그게 아니라 너무 분명하게 창조를 지칭하는 말씀만 하시므로 그것이 간격 이론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억지로 그것을 시간의 간격을 개의 창조로 해석하려다 보니까, 성경에 없는 것들을 1절과 2 사이에다가 집어넣게 것입니다. 여러분, 사탄이 언제 타락했는지 아세요? 우리가 그렇게 정확하게 없습니다. 성경으로부터, 우리는 사탄이 천사로부터 타락했다는 것까지는 있지만, 그것이 어느 때인지를 알기는 굉장히 어려운데, 그분들은 그것을 해결했던 것입니다. 바로, 번째 창조와 번째 창조 사이였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이 성경에서 찾을 있는 내용이라면, 우리가 받아들이기가 쉬운데, 그게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식의 창조 해석이 점점 어려워지게 되었던 것이죠. 예를 들어, 하나님에 의한 사탄의 심판 내용이 나오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심판받은 사탄은 멸망을 당했는데, 멸망 이후에 다른 사탄들은 어떻게 다시 지구에 있게 되었는지, 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로 성경 이해가 복잡해 지게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생겨서 수많은 생물들이 죽게 되었는지, 우리 인간의 죄가 아니라 사탄의 죄로 생물들이 죽게 되었던 것인지... 이런 식으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 않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상상을 하고 유추해야 되는 일이 발생하게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성경적이냐, 하는 질문을 당연히 하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하나의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은 이것입니다. 본문 2 뒷부분에 보시면,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이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운행이라는 단어는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지만, 독수리가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 앞에서 너풀거리다라는 뜻입니다. 단어는 성경에 자주 나오는 단어는 아닙니다. 성경에서 단어는 무엇인가를 지키고 보호한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 그러면 간격 이론의 성경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혼돈하고 공허한 것은 지금 심판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것은 빨리 바뀌어야 것이며, 지키고 보호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서 그것들을 지키고 보호하고 있다는 말은 납득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이론을 주장하신 분들이나, 혹은 이것을 설명하려고 이해하려고 애썼던 분들이 신앙이 없거나, 혹은 그분들이 전혀 엉뚱하거나 말도 되는 것을 주장하셨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의 주장은 심지어는 지질학의 문제도 해결을 못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심판하셔서 많은 화석이 생겼다고 하면, 모든 생물들이 죽어야 했고, 그래서 그것들이 땅에 묻혀서 지금 있는 여러 가지 화석이 생겼다고 설명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해야 되는 것일까요? 수억 동안 심판을 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은 모든 생물체 화석들이 각기 다른 층에서 발견되므로, 지질학 층이한꺼번에 죽을 것이 아닙니다. 층이 시간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러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심판을 하셨다는 뜻인데, 그것은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납득하기 어려운 점은, 믿음이 있는 신앙인들에게는 이러한 주장이 납득할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과학자들에게는 전혀 설득이 되는 이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여러분과 제가 보는 것처럼, 이론을 설명하려는 여러분들이 자꾸 여러 주장들을 해석에 더하게 됩니다. 그래서 유명한 루시퍼의 홍수라는 말도 생겨나게 되었어요. , 사탄을 물로 멸망시키는, 홍수가 시대에 있었다고, 그래서 그런 지질학적인 층이 생긴 것이라고, 이런 설명까지 하게 것입니다.

 

간격 이론의 결론 1절과 2절의 재확

그렇지만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1절과 2절은 문장의 구조와 문법적인 모든 것을 고려해볼 , 서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는 문장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심판이 안에 끼어들어서 타락한 사탄의 심판을 얘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면에서 간격 이론은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굉장히 어려움이 많은 이론입니다.

 

창조 과정의 목적: 점진적

그렇다면 우리들은 많은 질문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번거롭게, 혹은 이해하기 힘들게, 이렇게 여러 과정들을 창조 기사에 넣어서 설명을 하셨을까요? 그냥, “내가 창조했다!”, 혹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모든 것이 있으라, 이상 !” 이렇게 하시면 단순하고 확실한데, 그렇게 하시지 않고, 이러한 복잡해 보이는 과정들을 설명하셨을까요?

 

여러분이 3 동안의 과정을 보시면, 먼저, 첫날처럼 보이는 날에 빛이 있으라그렇게 얘기 하시지요. 빛은 무엇과 비교가 되는 거죠? 어둠과 비교가 되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름을 붙여 주셨습니다. 빛을 낮이라 하고, 어둠을 밤이라 하셨습니다. 이름까지 붙여 주셨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내용으로써, 흑암을 대조를 시키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물을 둘로 나누어서 하늘과 바다를 만드셨습니다. 위에 있는 물과, 아래에 있는 물로 나누셨지요? 그러면 물은 어디 있던 것일까요? 바로 앞절에 있던 내용입니다. 바로 물을 나누십니다. 다시 말하면, 과정들 속에 변화와 진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정이, , 어둠으로 시작했지만 빛이 나왔으며, 물로 시작했지만 하늘과 바다와 땅이 나왔습니다.

 

, 여러분! 여기서 우리의 이해를 위해서, 조금은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지만, 건너 뛰어서 창조의 끝을 생각해 봅시다. , 모든 창조의 마지막, 그게 창세기에서만이 아니라 계시록의 내용에도 나오지요? 계시록에 보시면, 어두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완전히 빛이 됩니다! 바다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바다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시고, 이를 하늘과 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물이 완전히 없습니까? 아니요, 생명수가 흐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러한 시작으로부터 우리는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목적을 향해서, 창조라는 것이 과정들을 거치고 있다는 것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6 동안 창조하신 이유는 바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으며, 그것들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고자 함입니다.

 

창세기와 과학/진화론의

오해하지는 마세요, 지금 과정들이 있다고 얘기를 하니, 그럼 진화론을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그럼 진화도 설명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창세기는 진화와 진화론, 혹은 과학을 통한 창조의 설명이라든지 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만약에 그런 책이라면 과학자들을 위해 쓰였을 아니에요. 말은 그럼 창세기가 전부 어떤 상징이나 신화일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분명한 사실입니다. 사실에 기초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것들을 우리에게 설명하는 언어는 절대로 우리가 지금 자꾸 질문하는 것처럼 이게 진화냐 아니냐 라는 것을 설명하는 언어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뜻입니다. 성경 어느 곳에서도 과학적으로 창조를 설명하거나,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실들을 과학적으로 표현하려고 시도하는 적이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런 것을 찾고 싶어하십니다. 중력을 성경에서 설명해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성경에서 설명해 주었으며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성경에서 나타난 모든 말씀의 기술들이, 만유인력이나 과학 법칙들을 사실로서 인정하지 않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은 사실이지만, 사실을 표현하는 방법이 과학과는 다릅니다.

 

성경 언어의 특징: 현상적, 문학적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보시겠습니다. 성경의 표현들은 워낙 상식적이고, 문학적이고, 우리 인간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서로 다르고 다양한 기술 방법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오늘 아침에 이렇게 행동을 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저는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정말 기분 좋게 아침 바람을 느끼면서 산책을 했습니다. 말씀은 이해가 되시지요? 그럼 여기서 나타나는 사실들은 어떤 것일까요?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산책을 했습니다. 그러나 표현들은 과학적인 표현과는 전혀 다른 기술 방법입니다. 과학적으로 이렇게 표현해야 합니다. ‘나는 오늘 아침에 북쪽 고기압과 남쪽 저기압의 기압골의 영향으로 생긴 동부 풍이 시속 10 마일의 속도로 부는 길을, 나를 끌어당기는 중력과 싸우고, 몸을 무겁게 누르고 있는 공기의 무게에 저항하면서, 154 걸음을 나의 종아리와 대퇴부에 있는 근육과 뼈를 사용해서 발을 움직여서 위치를 이동시켰습니다.’ 이게 과학적으로는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식의 표현으로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 다시 말해서, 과학적인 논문이나 기사를 쓰고 있지도 않습니다. 말하자면, “해가 동쪽에서 떴다라는 말이 사실인가요? 엄밀하게 말하면, 아닌 것입니다. 반대로 지구가 태양 주위를 것입니다. 그러나, 해가 동쪽에서 떴다는 말도 사실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 해석의 원리: 사실과 표현

이제 여러분은 제가 말씀드리려는 포인트를 아셨을 것입니다. 성경은 사실을 말하는 것만이 주된 목적이 아닙니다. 사실을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분명히 우리가 사실을 진실이라고 믿으면서도, 성경이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서 독특하게 표현하고 있는 무엇까지도 우리가 발견할 있도록 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발견했던 과학적 이론만을 들고, 그것을 성경에 대입시켜, 말씀을 이해하려고 하면, 거기에는 무리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의 천지창조는 사실일까요, 아닐까요? 당연히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그것도 사실입니다. 이걸 부인하는 사람은 신자가 아닙니다. 신자는 그것을 이해할 있고, 당연히 사실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창조하신 내용을 성경에서 기술할 때는, 그것을 그냥 단순히 표현하신 아닙니다. 계시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과학 저널에서처럼, 사실을 쉽게 이해할 있도록 하기 위해 설명하신 것이 아니라,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그것을 이해할 있게 하기 위해서 쓰신 책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의 다중 독자

성경의 기록 목적이 그렇기 때문에, 성경 내용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항상 고려의 대상이었습니다. 성경이 처음 지어지고 하나님께서 이를 모세에게 전해 주셨을 출애굽 당시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와 상황이 굉장히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습니다. 그러면 그것만 존재하느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언제나 이후에도 책을 읽고 하나님의 백성이 모든 이들을 생각하시고 쓰였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놀라운 책이 아닐 없습니다. 비록 성경이 모세와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일차적으로 쓰여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독자 안에는 우리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17장에서 기도하실 분명히 그러셨지요? 20, “내가 비옵는 것은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그뿐 아니라, 다른 여러 성경의 표현에서도 그렇죠,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렇게 얘기합니다. 마찬가지로 창세기도 현재의 우리를 위해서 기록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을 하나님이 편집하신 것입니다.

 

성경: 편집되고 해석된

창세에 일어난 일을 하나님이 정말로 적으시려고 했다면, 글로 표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말도 안됩니다. 예수님의 3 동안의 공생애도 적을 수가 없어서 그렇게 줄여서 적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중에 중요한 내용을 편집을 하신 것입니다, 모든 사실들을. 그러니까, 성경에 기록된 사실은 우리에게 필요하고 우리가 이해해야 부분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직접 해석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해 있도록. 그래서 당신이 직접 해석을 하신 내용을 우리들을 위해서 기록하셨고, 그것이 바로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계시를 들을 때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단순한 지식만 가지고 그것을 이해하려 해서는 됩니다.

 

과학과 신앙의 올바른

우리가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연구해서 창조의 신비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좋은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반 계시를 통해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많은 지식으로 우리가 창세기에 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신비들을 조금 이해하는 것은, 저도 바라는 바이며,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창세기를 가지고 과학적인 사실을 교리처럼 만들어내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너무나 틀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러한 접근법은, 과거에 있었던 많은 훌륭한 신앙인들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빠질 있는 오류 중의 하나가 것입니다. 이유는, 우리가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모두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의 과학자들도 그렇게 생각했으며, 많은 신앙인들도 성경을 기초로 하여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세상은 인간과 지구를 중심에 두고 창조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현재를 사는 우리는 정말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창세기는 지동설과 천동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책입니다. 중에 어떤 것이 맞느냐하는 것에도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이처럼 이전에 과학적 이론을 가지고 성경을 판단하려 했다는 것이 옳지 않은 것처럼, 우리가 오늘날도 진화론과 그런 과학적 이론들을 가지고 창조 기사와 창세기를 무조건 설명하려고 하면, 역시나 잘못된 오류에 빠질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창세기의 진정한 메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가 사실을 말하고 있고, 그리고 그러한 사실들을 하나님의 의도와 뜻에 따라 아주 독특하게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런 이해의 관점에서 창세기가 무엇을 우리에게 이야기하려 하는지를 찾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창세기를 주셨을 , 하나님께서 창세기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그들에게 주기를 원하셨을까요?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땅입니다. 혼돈과 공허라는 말도 역시 생명체가 살기 어려운 땅이라는 뜻입니다. 천문학자들이라든지 혹은 화학자들이 나와서 이렇게 성경을 이해할 있겠지요. '카오스라고도 하는 혼돈 속에서 우주가 탄생하였구나, 그래서 혼돈과 공허를 통하여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성경은 과학적인 책이구나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이 의도하는 바와는 전혀 다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혼돈이란 단어는 사실은 인간이 살기 어려운, 혹은 생명체가 살기 어려운 곳이다라는 사실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과학적인 이론을 가지고 성경에서 일치점을 찾아서 성경이 과학적이다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정한 사실이 어디에 있으며, 성경이 진실로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타당한 것입니다.

 

출애굽 과정과 창조 과정의

이스라엘의 경우를 다시 보시겠습니다. 그들이 어둠 속을 가고 있을 , 하나님께서 불로서 임재하셔서 그들을 지키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빛과 온기로 차가운 어둠 속에서 그들을 비추셨습니다. 그들이 뜨거운 한낮에 태양 아래서 고통을 당할 때는, 하나님의 구름 기둥으로 그들을 열기로부터 가려주셨으며, 그들이 안에서 휴식을 취할 있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와서 그들을 살리기도 하셨으며, 그들이 바다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도 하셨고, 하늘에서 내려온 하늘의 떡을 먹게도 하셨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방법이자 과정입니다. 곧바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순식간에 건지셔서, 가나안 땅에다 순식간에 옮겨 놓으신 아닙니다. 과정이 있습니다. 근데 모든 과정을 성경이 뭐라고 표현하냐면 바로 창조의 과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창조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과정이 출애굽의 전체에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신약 백성과

여러분과 저는 어떤가요? 언약의 백성들은 이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혼돈과 공허라는 것은,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친숙한 단어들이죠. 이것은 우리의 죄의 자리를 훨씬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혼돈과 공허 속의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셨으며, 하늘과 땅이 우리 안에서 자리를 잡아가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어둠의 나라에서 빛의 나라로 옮겨졌고, 그리고 창조와는 달리, 우리는 죄로부터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근본적으로는 우리는 하나님의 완성된 나라를 향하여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빛의 나라로 옮겨진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최후에는 빛이 가득한 나라에 살게 것이고, 그리고 생명수 강가에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며 산다고 성경에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조 과정의 핵심: 하나님의

그리고 오늘 우리가 알아야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모든 창조의 과정에 무엇이 있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영이 거기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점을 성경에서는 분명히 밝히고 계십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것이 바로 창조의 틀에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성경에서 창조라는 것을 설명하는 구절이 나올 때마다, 바로 성령 하나님이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홍수가 시작되었을 , 그리고 홍수가 끝났을 때에도, 홍수의 모든 사건에서 바람이라고 표현되는 루아흐 (H7307)”, 바로 성령님이 등장합니다. 출애굽기의 홍해 사건 때에, 뭐가 불어요, 바람이 붑니다. 그리고 바람이 ,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물 사이를 건너면서 다시 새롭게 물속에서 나와, 민족으로 탄생하는 새로운 창조에 바로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공생애를 하시기 위하여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 그가 물에서 올라 오실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비둘기 같이 성령이 그곳에서 나타납니다. 그것은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운행하시니라" (메라헤페트) 의미: 보호와

설교 부분에서 말씀드렸듯이, 운행한다는 말의 뜻은 너풀거리다” ,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 주위를 빙빙 돌면서 자기의 새끼 위를 너풀거리면서 날개를 펴서 새끼를 덮어 주고, 받아주며 어미 독수리가 자신의 새끼들을 돌보고 지키는 같이, 구절 자체가 너풀거리다라는 단어의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확연하게 알게 합니다. 혼돈과 공허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창조 세계를 버리시는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보호하고 지키시며, 세계의 왕이시며, 이것들을 다스리고 계시며, 항상 임재하고 계신다는 것을 성령 하나님으로 보여주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나쁜 것에서 좋은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창조의 일부분으로 설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혼돈과 공허의 성경적 의미 재확

이사야서 24장이나, 혹은 예레미야서 4장에 나오는 혼돈과 공허는 황무지를 뜻합니다, 사람이 없고 새도 깃들 없는. 물론 이사야서에는 부엉이는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씀하셨는가 하면, 나라가 바로 없고 사람은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부엉이만 깃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숲처럼 되었다는 말입니다. 과학적 발견을 우리가 대입시켜서 우주를 혼돈이라고 설명할 없는 이유입니다. 과학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모르겠지만, 만유인력의 법칙이 나중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서 다시 조금씩 변형되고 보완되었듯이, 우주는 혼돈과 카오스의 상태로 진행한다는 열역학의 엔트로피 법칙도 인간이 발견한 이론인 만큼, 그렇게 완벽하지 않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기서 그것을 말하려고 하는 아니라, 오히려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내가 너희와 함께 하고 있다”, “ 혼돈과 공허, 황무지 같은 곳에서 나의 영이 너희와 함께 하고 있다라고 하십니다. 저의 말이 아니라, 이사야서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직접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바다를 지날 때에,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가 일어날 , 하나님의 영이 너희와 함께 있었다.” 구약에 나오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신약의 이야기처럼 너무나 분명하게 나옵니다.

 

이스라엘에게 성령의 임재가 주는

그렇다면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광야에서 고통받는 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희소식이 무엇일까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지금, 물이 없고, 먹을게 없고, 어떻게 지를 모르겠으며, 자신들을 이끄는 인도자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 애굽을 번의 재앙으로 완전히 무찌르신 하나님,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 혼돈의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얼마나 놀랍고 경이로웠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성령의 임재가 주는

지금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죄로 인해 무너져 버렸고, 매일 매일 죄의 유혹 속에서 흔들리고, 미숙한 모습 때문에 항상 고민하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 조차도 바로 분간하지 못하는 나의 못남 때문에 우리는 항상 힘들어합니다. 죄와 죽음의 힘이,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하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지금도 창조 중에 있으며, 나는 너의 수면 위에 운행하고 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매일 성령이 계신다”,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성령님을 의지한다”, 라고 고백하지만, 그게 진짜라는 것을 확신하십니까? “성령이 계십니다!” 라고 여러분이 고백했기 때문에 성령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모든 것을 깨닫기도 전에, 여러분의 속에서 죄의 힘에 막혀 힘들어서 헉헉거리고 있는 그때에, 혼돈과 공허처럼 보이는 그곳에,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과 함께 일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위를 너풀거리며 지키고 계십니다.

 

창조의 목적: 혼돈이 아닌 거주 (이사야 45:18)

이사야서 45 18절에서 창조를 이야기할 ,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않으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 창조는 혼돈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과 우리가 영원히 함께하는 나라를 향하여 가는 창조를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고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성령 안에서 창조를 경험하는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에 6일이라는 기간을 필요로 하시는 것입니다, 하루에 끝날 간단한 일을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 모든 것이 너희의 속에서 낮과 밤을 통하여 경험될 것입니다. 다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는 하나의 창조를 너의 속에서 경험하게 것입니다.” 어둠은 결국 빛으로 나갈 것입니다. 물은 결국 하늘과 땅으로 끝나게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신비입니다. 그때 우리는 확신합니다.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오늘도 나를 창조 하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창조는 년이든, 년이든 상관없이, 흘러간 시간들의 사건을 말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4000 아브라함에게 창조의 사건이 아브람의 사건이었습니다. 3 5 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건이었습니다. 3천년 전에는 다윗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2000 전에는 예수님의 사건이었습니다. 오늘은 어떻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사건입니다. 창조가, 안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일이 우리에게 벌어지는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령 안에서, 성령의 역사 속에서, 오늘도, 그리고 저녁이 가며 아침이 오는 내일도, 성령의 능력 안에서 주님의 창조의 사건을 맞이하십시오!

 

마무리

사랑의 주님, 저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격려와 위로보다, 어쩌면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적인 욕망을 만족시키고 싶어 하는 같습니다. 많이 알고 싶지만, 알려고 하는 이유가 나의 만족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알고자 함인지 저희로 다시 한번 생각하게 주시며, 하나님이 우리의 만족이라면 주님, 성령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나의 귀한 인생을 소홀히 여기지 말게 주시고, 오늘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사 새롭게 창조하고 있는 우리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바라봐야 할지를 다시 깨닫게 하여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